알랭의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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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요리킹 조회 15회 작성일 2021-10-14 07:38:5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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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C] 행복의 필수 요소 3가지 _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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ᆞ : 생각한대로 살지못하면 사는대로 생각하게된다.
최군자 : 우정,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능력가지기, 자신과의 대화시간 충분히 가지기
효진 : 와 진짜 근래 경험한 모든 것들이 스쳐지나가네요
정말 공감합니다. 어쩜 이리 명료한지 가슴이 진짜 시원해지네요. 이 영상 보게 된 게 너무 감사하네요
차은정 : 우정. 독립성. 생각을 많이 하기.
127볼펜 : 정말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알랭 행복론]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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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행복론 - 알랭 지음 / 박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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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poetry nadamTV : 시작하시는 멘트부터 벌써 저의 마음은 밝아지기 시작해요.
얼마나 관심을 가지면 말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는지 감탄했고,
인간사, 많은 부분에서 일단은 자신의 감정을 알고 다스려야 하는 거네요..
오늘도 감사히 시청했습니다~~**
앙팡모녀M&D : 감정의 원인을 알아야 문제 가 해결 되는군요
해피바이러스 : 공감이 많이 되는 이야기예요 ....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라,,,
해피바이러스 : 즐거운 책방님~~~ 잠 깐 쉬어가야 겟다 ..차한잔 하면서 ㅎㅎ
오늘도 바람이 좀 부네요,,,,
알랭 행복론,,,
아,,,, 진짜 ~~~소개를 해주신 책이군요,,,,
일단 들어볼께요,
나무쟁이 : 알랭의 행복론 말을 길들이듯 진짜 원인을 알아야 행복을 찾아 갈수 있을것 같네요

행복의 철학_행복이란 무엇인가_금욕주의와 쾌락주의_행복심리학

행복에 대한 관점은 크게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로 나뉩니다.
금욕주의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을 말과 마부에 비유했습니다. 말은 이리저리 날뛰는 욕망의 감정을 뜻하고, 마부는 감정을 통제하는 이성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코끼리와 코끼리 조련사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플라톤은 이성으로 이데아를 발견하는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지요. 금욕주의는 이성을 통해 인간의 욕망, 즉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최고의 선이자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을 쾌락적 삶, 정치적 삶, 관조적 삶으로 구분하고, 관조적인 삶이 참된 행복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관조적 삶은 욕망을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삶입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전 생애를 통해 성취됩니다. 한 마리 제비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관 뚜껑을 닫은 다음에야 그가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금욕주의는 스토아학파에 이르러 절정에 이릅니다. 에픽테토스나 세네카 같은 철학자가 그 정점에 서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행복은 ‘더 이상 욕망할 것이 없는 상태’이거나 ‘욕망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욕망하는 존재는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스토아학파는 물질적 욕망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즉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이성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한, 고문을 당해도 행복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행복과 도덕을 같은 것으로 파악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도덕입니다. 처음 보았던 사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행복했을까요? 또 길거리에 지친 몸을 누인 신부님은 행복했을까요? 칸트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복할 자격과 가치를 지닌 사람이지요.

칸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도덕적 의무를 지켜야 할 때, 개인의 행복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옳다면 개인의 고통과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행복은 도덕보다 우선할 수 없고, 도덕이 행복의 수단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인간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불행할 수도 있지요. 이를 ‘철학자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 정신적 만족을 추구해야 행복하다는 철학자들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이 석가나 예수처럼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금욕주의의 반대편에 쾌락주의가 있습니다. 대표적 철학자는 에피쿠로스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감각적 쾌락주의자는 아닙니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감각적 방종이 아니라 욕망의 부재를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한적한 정원에 공동 주거지를 만들고, 여성과 노예에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그들이 방탕하고 난잡한 생활을 한다는 거짓 소문을 낸 것은 제자 티모크라테스였습니다. 서기 3세기의 전기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철학자들의 생애를 다룬 책에 이 소문을 기록하는 바람에 두고두고 오해가 생겼지요.

계몽주의 이후 철학자들이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받아들이면서 행복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습니다. 가령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성이 감정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고, 도덕조차 감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덤 스미스 역시 도덕을 감정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또 제러미 벤담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쾌락과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모든 쾌락과 고통의 가치를 합산해야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죠. 그래서 쾌락을 계산하는 일곱 가치 척도를 제시했습니다. 쾌감의 순수성, 강도, 근접성, 확실성, 풍요성, 범위, 지속기간이 그것입니다. 그가 생각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이런 계산을 통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논쟁거리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은 양뿐만 아니라 질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지적 쾌락이나 도덕적 쾌락의 경우에는 배 부름의 쾌락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을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이 있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사는 것이 낫다.”

어떤 쾌락이 더 가치 있는 쾌락일까요?
두 가지 쾌락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일 때 주저 없이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쾌락입니다. 하지만 며칠을 굶주린 사람에게 지적 쾌락은 의미가 없고, 목이 마른 사람에게 최고급 와인은 가치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쾌락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죠.

토마스 홉스는 행복이 정신적 만족이라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도덕철학자들이 말하는 지고 지순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그에게 행복은 수많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성립되기 전의 세상은 수많은 인간들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일 수밖에 없지요.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네요. 금욕주의자는 행복, 도덕, 이성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행복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이며, 옳은 일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죠. 또 이성의 획득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쾌락주의자는 행복을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느끼는 경험으로 파악하며, 도덕과 행복을 동일한 것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또 행복이 이성이나 정신적 만족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욕구의 충족을 통해 획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쾌락주의자에 가깝습니다. 행복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과 같습니다. 더구나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도 아니고, 이성을 추구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만일 이성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면 인간은 더욱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위험한 상황일수록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이며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지요. 동물의 행동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행복, 정신적 행복은 지적 허세인 동시에 공허한 수사에 불과합니다.

헤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는 행복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역사에서 행복한 기간이란 결국 백지로 남은 빈 면들일 뿐이다.“ 행복한 시기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전쟁, 혁명, 학살, 정복과 관련된 사건과 인물들이지요.

인류는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 앞으로 우리는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서서히 알아갈 것입니다.
비정한세상 : 개처량한 세상.. 피 토하는 음악..기
정민규 :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를 비교하라면 어떻게 비교할수있을까요?
effect Medici : 영상은 잘 보았습니다만 마지막 부분 유튜버님의 주장을 하신걸 들어보면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네요. 행복은 욕망을 성취하거나 욕망을 줄이거나 둘중 하나라고 하셧는데 정작 욕망은 절대로 채울수도 없을뿐더러 줄이려고 하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하셨죠. 이것이 결국 허무주의나 염세주의, 비관주의가 아니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말을 좋게 한거지 결국 이세상에 희망은 없다 단지 고통뿐.. 이런느낌?
lhg : 저는 적당히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네요
Marang Jo :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만족을 얻기위해 금욕하고 수행하며 상당한 경지에 오르는 사람도 많은데 지적 허세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은 좀 오만한 태도 아닐까요? 저는 한때 쾌락주의에 탐닉하다 어느 순간 모든 쾌락이 무감각해지며 쾌락중독 증상에 시달려 더욱 불행해지는 경험을 한 이후론 본능적 행위에 의한 육체적 쾌락은 적당히 절제하고 그보다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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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의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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